|  조선왕실의 백자로 거듭난 질 좋은 풍화토 - 양구백토



   양구백토 (G12)



   + 양구군 방산면 장평리

   + 탐방팁

      뷰 포인트  : 

        양구자기박물관(장평리)

      교통 정보  : 

       양구버스터미널 → 방사면소방서(방산면 장평리) 하차 → 

       양구백자박물관(도보 0.1km)

       [08:10~19:40)/일 4대 운행]






  양구백토  

양구백토는 석류석 화강편마암(花崗片麻巖, granite gneiss)의 풍화토로, 백운모계 고령토(高嶺土, kaolin)*에 해당된다. 이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백자의 중요한 원료(도석 : 점토, 장석, 규석을 모두 함유하여 그 자체만으로도 도자기의 성형이 가능하고 소성하면 단단하게 구워지는 물질)로 사용되어 왔다. 양구 방산면 지역의 백토의 장평리 선우골, 현리 선안, 금악리 수입천변, 오미리, 성곡령 정상 등 여러 지역에서 출토되며, 북동방향으로 큰 맥을 이루며 방산 지역을 가로 지르는 형상으로 존재한다.


*고령토 : 바위 속에 있는 장석·정장석·소다 장석·회장석 같은 장석류가 탄산 또는 물에 의해 화학적 풍화되어 분해된 (회)백색의 점토광물로 기반암 위에 두꺼운 층의 형태로 발달하는 것이 특징이다. 중국의 가오링[高陵]에서 많이 산출되었으므로 고령토라 불리게 되었다.

  냉전 속에 피어난 생명의 터전  

백자 원료의 출토지일 뿐만 아니라 도자기 생산지로서 양구 방산면은 이미 고려후기부터 주목받는 곳이었다. 방산지역은 풍부한 양질의 백토와 함께 수입천이 관통하면서 물을 구하기 쉬웠고, 수목이 무성하여 땔감이 충분하였으므로 도자기를 제작하기에 좋은 지리적 조건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수입천~소양강~북한강~한강으로 연결되는 수운을 통하여 도자기와 백토를 서울이나 광주분원(양수리)까지 운반하기에도 용이하였다. 특히, 양구 방산지역은 조선시대에는 경기도 광주 분원(사기제조장)에 원료를 공급하였던 곳으로 광주분원의 기술과 조형미가 이식된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양구 방산지역의 백자 생산역사는 현재 양구백자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양구백자>

 

  이성계의 꿈을 품은 양구 백자  


1932년 6월 금강산 방화선(防火線) 공사 중에 금강산 일출봉 석함 내에서 백자 대발 4점·향로1점·은제 도금 탑형사리기·은제 귀이개 등을 포함한 ‘이성계 발원 불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다. 이 사리장엄구는 이성계와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서 조선의 건국 직전인 1390년에서 1391년 사이에 미륵을 만나기를 기원하면서 발원된 것이다. 즉 이 사리장엄은 이성계의 종교적 신실함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왕조를 건설하기 위한 정치적 준비 단계에 해당하는 것이기도 하다. 태조 이성계 발원문이 쓰여진 백자의 명문 가운데 ‘방산자기장 심룡(方山子器匠 沈龍)’이라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은 이들 이성계 발원 사리구의 생산지가 양구 방산일 것을 시사해주고 있으며, 이 명문은 일찍이 고려 말기부터 양구 방산에서 백자가 만들어졌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역사적 사료이기도 한다.

     

 


  명품 백토 산지의 자부심과 애환  

방산지역은 도자기 생산 초기에 국가에 백자를 공납해오다 15세기 후반 경기도 광주에 사옹원(조선시대 궁중의 음식을 맡아본 관청)의 분원이 설립된 후로 조선 왕실에 진상하는 백자의 백토 공급지(원료 수급지)로 변모하게 되었다. 백토가 대량으로 외부에 반출됨에 따라 채굴을 담당하는 소수의 양구 주민들은 상당한 고통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백토는 높고 험한 산에서 백토가 채굴되었고, 매해 압사하는 역부가 발생할 정도로 채굴 여건은 매우 열악하였으며, 심지어 한 겨울에도 백토가 채굴되기도 하였다. 이로 인해 숙종 이후 정조 때까지 자기용 백토의 반출에 대해 조정에서 여러 번 문제가 제기되었다. 이처럼 각종 민원과 어려움을 감수하면서까지 양구백토를 채취하였던 것은 관요백자 제작에 꼭 필요했던 우수한 원료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조선시대 백자생산을 책임지던 사옹원에서는 다른 지역의 백토를 가져다 그릇을 생산하게 되자 양구백토가 아니면 그릇이 몹시 거칠고 흠이 생기게 된다고 하여 다시 양구백토를 가져다 쓸 것을 주청하기도 할 정도로 자기의 원료로서 양구백토의 품질은 매우 우수하다.

<양구백자박물관 전경>

  백토와 함께 ‘한반도 충돌의 증거’를 품고 있는 양구 방산지역  

중국이 남중국과 북중국이 충돌하였다는 것은 많은 연구를 통하여 잘 알려져 있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한반도도 충돌하였다는 추론을 하게 되었는데, 한반도의 허리를 이루는 임진강대가 중국 충돌대의 연장선이라는 임시 모형이 설정되어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임진강대는 DMZ를 따라 경기도와 강원도에 넓게 펼쳐져 있다. 임진강대 지역은 북한과 접하고 있어서 연구에 한계가 있지만 현재의 한반도의 모습을 추적할 수 있는 지질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야외에서 산출되는 양구백토 (제공 : 최돈원)>


  교통정보  

양구버스터미널 → 방사면소방서(방산면 장평리) 하차 → 

양구백자박물관(도보 0.1km)

[08:10~19:40)/일 4대 운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