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해의 푸른 바닷물이 차오른 아름다운 해당화 호수 - 화진포



  화진포 (G18)



   + 고성군 현내면 죽정리, 거진읍 화포리

   + 탐방팁

      뷰 포인트  : 

        김일성별장(거진읍 화포리), 응봉(화진포 산소길 내),

        금강삼사 뒤 전망대(화진포 산소길 내)

      교통정보  : 

      간성시외버스터미널 → 현내면 초도리 하차 →

      화진포(도보 700m) [05:40~21:00)/일 30대 운행]

      김일성별장은 고성군청에서 안보전시관으로 운영 중인 곳으로

      별도입장료 발생함(해당 입장권으로 이승만 별장, 이기붕 별장 관람 가능)


  파도가 사로잡은 호수  

화진포는 남한에서 가장 넓은 면적의 석호로 화진포 해변부근의 사취(沙嘴, spit : 파랑과 연안류의 작용으로 만의 입구에 형성되는 새부리 모양의 모래톱) 발달로 인하여 만의 입구가 막히면서 형성되었다. 석호는 후빙기(後氷期, post-glacial age)해수면 상승으로 해안이 침수되어 만이 형성되고, 그 입구가 사주(沙柱, sand bar : 파랑과 연안류의 작용으로 해안에 연이어 형성된 모래더미)나 사취로 가로막혀서 발달하게 된 지형이다. 이는 기후변화가 특징적이었던 신생대 제4기를 대표하는 지형이다. 또한 석호는 바다와 육지를 연결하는 생태통로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민물과 바닷물의 교류가 빈번하여 해양생물과 민물생물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독특한 자연환경 특성을 지니고 있어 높은 보존가치를 지니고 있다. 화진포의 형태는 8자형으로 남호와 북호로 구분되며, 크기는 남호가 더 크고, 바다와 통하는 물길은 북호에 위치한다. 화진포는 호수의 주변으로 해당화가 많았다는 데에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일대는 10여 년 전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가을동화’의 마지막 장면을 촬영한 곳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후빙기 : 최후빙기 이후 지금까지의 기간이다. 현세라고도 한다. 이는 북부 독일 평원까지 확장되었던 유럽의 빙하가 스칸디나비아 반도로 후퇴한 1만 년 전을 기점으로 삼는 것이다. 비교적 온난한 시기이나 균일하게 온난한 것이 아니라 몇 차례의 한난이 되풀이된 끝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해수면 상승이 가져온 비경  

화진포는 지질적 조건과 기후변동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빚어낸 지형이다. 화진포 석호의 발달과정은 3단계로, 움푹한 땅(谷地)형성 - 해수면 상승 - 사취 발달 순으로 구분된다. 화진포 일대의 주요 암석은 화강암(각섬석-흑운모 화강섬록암**)이다. 

화강암은 지표부근에서 풍화를 겪게 되면 푸석푸석하게 약해지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 빙하기 이전인 신생대 제3기(6600만 년 전에서 200만 년 전 사이)에는 한반도를 포함하여 지구가 전체적으로 온화한 기후를 보이던 시기였다. 따라서 화강암은 심층풍화(지하에서 주로 수분과의 접촉을 통하여 암석을 구성하는 광물들의 결합이 풀려 암석이 스스로 부스러지는 현상)를 활발히 받게 되었다. 이후 마지막 빙하기(최종빙기)에 해수면이 하강하면서 하천이 심층풍화를 받아 약해진 화강암층을 파내려가 넓고 깊은 골짜기를 형성하였다. 

이는 하천이 항상 바다의 수면과 동일하게 높이를 맞추어 가려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빙기가 지나고 후빙기에 들어서 해수면이 상승하였고 물이 차올라서 골짜기는 만으로 변하게 되었다. 빙기가 극에 달했던 약 1만 8,000년 전의 동해안은 현재보다 약 130m가량 낮은 해수면을 형성하였으나 마지막 빙하가 물러가면서 해수면이 급격히 상승하여 약 6,000년 전에 침수 범위가 최대에 이르렀다. 그 후 해수면 변동은 매우 완만하게 진행되어 약 3,000년 전경에 이르러 현재와 유사한 해안선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만의 입구는 수심이 얕은 상태로 유지되면서 바다로 돌출해 있는 곳으로부터 점차 모래가 쌓이기 시작하였으며, 모래톱이 점차 성장하여 만의 입구를 가로막으면서 지금과 같은 화진포 석호를 이루게 되었다.

< 화진포 석호의 형성과정 >

최종빙기에 들어서 해수면이 낮아짐에 따라 하천이 바닥을 깎는 함(하방침식력)이 증대되어 깊은 곡지를 형성하였다. 후방깅에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곡지는 만으로 변화되었으며, 파랑이 모래를 쌓아올리는 작용(퇴적작용)으로 모래톱이 새부리처럼 쌓이면서 만의 입구를 가로막이 석호를 형성하게 되었다.

**화강섬록암(花崗閃綠岩, granodiorite) : 화강암 중에서 각섬석을 비교적 많이 가지고 있는 암석이다. 화강암은 땅속 깊은 곳에서 마그마가 서서히 식어서 생긴 암석으로 장석, 석영, 운모 등을 주성분으로 하며, 굵은 일갱이로 이루어져 있어 표면이 거친 편이다.

< 최종빙기의 해안선 >


  권력자들을 사로잡았던 호수  

화진포는 주변 경관이 수려하여 예로부터 동해안의 주요 경승지로 꼽혔으며, 이로 인하여 유명인사들이 휴양차 다녀간 기록과 흔적이 화진포 호수 주변에 남겨져 있다. ‘김일성 별장’은 그 대표적인 유산이다. 김일성 별장은 1948년부터 6.25전쟁 이전까지 김일성 일가가 하계 휴양을 하던 곳이다. 이 별장은 화진포의 북호와 동해바다가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암석해안의 중턱에 위치하여 ‘화진포의 성’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1940년까지만 해도 김일성 별장은 셔우드 홀(Sherwood Hall, 1893~1991)이라는 캐나다인 선교사의 별장이었다. 별장의 원 주인이었던 셔우드 홀은 한반도에 태어난 최초의 백인 아이이며 크리스마스 씰을 우리나라에 보급한 최초의 인물로 평생을 한국을 위해 의료봉사한 인물이다. 김일성 별장과 달리 남호가 잘 내려다보이는 곳에 ‘이승만 별장’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승만이 부인과 함께 수시로 찾았던 별장으로 1954년 건립되었다. 김일성 별장의 아래편에는 ‘이기붕 별장’이 위치한다. 이는 1920년대 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건축되어 사용된 건물로써 해방이후 북한 공산당의 간부휴양소로 사용되다가 휴전이후 부통령이었던 이기붕의 부인 박마리아가 개인별장으로 사용했던 건물이다.



< 화진포 일대의 근대문화유산 >

  1    김일성 별장

  2   이승만 별장

  3   이기붕 별장


  교통정보  

간성시외버스터미널 → 현내면 초도리 하차 → 화진포(도보 700m) [05:40~21:00)/일 30대 운행]

김일성별장은 고성군청에서 안보전시관으로 운영 중인 곳으로 별도입장료 발생함(해당 입장권으로 이승만 별장, 이기붕 별장 관람 가능)